Tuesday, October 2, 2018

광야를 지나갈 배짱



광야를 지나갈 배짱
8:1-10 (2018 9 30일 주일예배)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독립운동을 하다가 숱하게 옥고를 치렀던 이육사 (Lee, Yook-sa) 시인의 광야 (Wilderness)”입니다.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그의 수인번호가 264번이었기에 이육사라고 불립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다 선언했다 하지요? 일제 강점기에 민족혼을 불러 일으킨 애국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광야(曠野)”는 텅 비고 막막히 넓기만 한 들녘을 의미합니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사막이 있습니다. 지형적으로 험악하고 토질이 척박하여 생물이 거의 없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사막은 광야보다 더 치열한 생과 사의 공간입니다. 어떤 글을 보니까, 연 강수량이 500밀리미터 이하이면 사막이라 부르고, 그 이상이면 광야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동쪽으로 길다랗게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요단 강 지역과 서쪽 지중해 가까운 곳에 위치한 평지를 제외하면, 거의 산악과 광야와 사막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비가 내리더라도 물을 저장할 수 없어 그저 황량하게 보이기만 합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부족하거나 거의 없는 곳, 바로 그곳이 광야요 사막입니다. 그래서 광야와 사막은 삶을 살아가기엔 너무나 불편하고, 도전적이며, 끊임없는 고난과 고통과 고독과 맞서야 하는 곳입니다. 고로 굳이 광야나 사막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노라면, 유난히 광야와 사막이 자주 언급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한 곳이 주로 광야와 사막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광야,” “황무지혹은 빈 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미드바르(mid-bawr')”란 단어 의미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미드바르광야, 황무지, 빈 들이란 의미 이외에도 “(말하는 도구로서의) 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드바르의 어원은 말하다란 뜻을 지닌 다바르(da-bawr')”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다바르,” 곧 말씀하신 곳이 바로 미드바르,” 광야, 황무지, 빈 들입니다. 비록 미드바르가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험난하고, 고난과 고통이 연속되는 곳이긴 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 그 미드바르에서 자신들의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므로 미드바르, 곧 광야와 사막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과 고통과 고독의 장소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접한 축복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드바르, 곧 광야와 사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환경 때문에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으로 훈련 받으면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다듬어지는 훈련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미드바르, 곧 광야와 사막을 지날 때, 하나님께서 세밀한 관심으로 그들을 지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4).
또한 출 13:22, 23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성도 여러분, 혹시 오늘날 여러분의 삶이 광야와 사막을 걷는 것과 매우 흡사하진 않습니까?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고독하진 않습니까? 그래서 원망과 불평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오진 않습니까? 무척 힘드시죠? 무척 괴로우시죠? 무척 외로우시죠?
그런데 알고 계셨습니까? 우리가 힘들게 걷고 있는 광야와 사막과 같은 인생살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곧 미드바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지켜 보호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가 친히 우리에게 다바르,”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의 미드바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다바르, 곧 무엇을 가르치고 계실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이 궁금증을 풀어보려 합니다.
첫째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2).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겸손함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완악합니다. 목이 뻣뻣합니다. 자꾸만 고개를 높게 쳐들고 싶어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참지 못하고 금방 발끈합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마음이 온순합니다. 자아가 죽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을 굳이 자랑하지 않습니다. 광야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곳이 아닌 준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쏟아놓지도 않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오히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둘째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십니다.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 .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2, 3)
광야에는 모든 게 부족합니다. 먹을 음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마다 내려주신 만나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광야에는 마실 물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샘물을 허락하셔야 기갈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길을 가야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5, 6).
한편으로, 40일 광야 금식기도 후 극도로 허기진 예수께 사탄이 다가와 던졌던 첫째 유혹이 이러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3). 하지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였느니라”( 4:4).
그렇습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떡이 아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아가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우리는 그 어려움에서 급히 빠져나가려 합니다. 기도할 때도, 어려움에서 빨리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힘든 일이 속히 지나가도록 해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잊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만을 절대 신뢰하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 배짱이라 부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겠다는 믿음,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셋째로,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이외엔 의지할 자가 없음을 가르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7-10).
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생활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고독하긴 했지만 그 여정 가운데 오직 하나님 이외엔 의지할 자가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결국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란 희망이 담긴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마음에 심어주고자 하신 교훈은 하나님 이외엔 그 어느 누구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43:19-21).
한편으로, 40년 광야생활 가운데 불평만 늘어놓았던 자들에게 광야는 끝내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모세의 뒤를 이어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후손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광야경험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도록 돕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되찾도록 이끄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광야 길을 걷고 있다면, 너무 두려워 말기 바랍니다. 또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광야여정이 찾아온다면, 두려워 말기 바랍니다. 또한 그 광야 길을 굳이 피해가려 하지도 말기 바랍니다. 광야 길은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합니다. 어찌 보노라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광야 길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혹시 광야 길에 들어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치 도피자가 동굴을 찾아 들어가듯,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도피처를 찾기 바랍니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광야 길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란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우리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광야가 푸른 초장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잃게 되면, 설령 푸른 초장이라 할지라도 그곳은 광야가 되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러 광야 속으로 들어갈 배짱을 가져보지 않으시렵니까?
사울 왕을 피해 광야와 사막을 전전긍긍하며 목숨을 유지하고 있을 때, 다윗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 (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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