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anuary 10, 2018

Rooted (1): 남아 있는 그루터기




Rooted (1): 남아 있는 그루터기
6:11-13; 10:15-21 (2018 17일 신년예배. 주현절)
2018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지난 주간 화, 수요일 (1 2일과 3) 금년 목회 계획 및 앞으로 교회가 나아갈 방향설정을 기도하며 헤아리고자 집을 나섰습니다. 처음엔 바스토우 광야로 찾아가려 했습니다. 그곳은 나에게 영적으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집을 나선 후 차를 몰고 가는데 바스토우가 아닌 반대 쪽으로 향했습니다. 왠지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서쪽으로 차를 몰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습니다. 따우젠옥스를 지나고, 카마리오를 지나고, 옥스나드를 지나서, 이젠 벤츄라까지 들어섰습니다.
그때 문뜩 이런 생각이 찾아 들었습니다. “금번 토마스 산불 피해지역을 둘러보며 그곳 어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면 어떨까?” 사실은 옥스나드에 들어서면서부터 산불 냄새가 내 코에 스며 들기 시작했고, 멀리 보인 산악들이 불에 온통 타서 검게 보이기 시작한 때문입니다.
결국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33번 국도로 진입해 토마스 산불 진원지를 찾았습니다. 33번 국도를 타고서 Los Padres National Forest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선택한 셈입니다. Ventura Downtown, Oak View, Ojai Valley를 지나 계속 차를 몰고서 산 위로 향했습니다.
운전하는 길에 나의 눈에 들어온 주변경관은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범위한 산불 피해 지역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와우!”라고 외치며 저절로 턱이 내려갈 정도였습니다. 거대한 폭탄에 맞은 것처럼 앙상한 뼈대만 남겨진 불타버린 집들. . .  들짐승마저 외면해버린 방치된 캠프장. . .
계속해서 차를 몰고서 Los Padres National Forest의 가장 높은 산자락까지 올랐습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검게 타버린 산밖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사진).
그 다음날엔 El Capitan State Park Campground에 가서 묵상하며 기도하려고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보노라니, 산타 바바라와 카펜테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산악들도 불에 타서 온통 검게 보였습니다.
특별히 금번 산불 피해 지역들을 둘러보는 동안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소방관들의 노고에 대한 이웃들이 여기 저기 달아놓은 감사 팻말과 배너들이었습니다 (사진). 소방관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주거지역들을 지켰기에 그토록 무시무시하게 활활 타오르던 화마로부터 그곳들이 그 정도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집들과 건물들이 전소되긴 했으나, 그 정도 피해만으로 끝난 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소방관들의 노고 덕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산불 피해지역을 돌아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토록 활활 타오르던 화염 속에서 주거지역들이 이토록 잘 보존되었다니? 참으로 소방관들의 수고와 노력이 컸구나! 너무나도 고맙구나!”
한편으로, 첫째 날 33번 국도를 타고서 Los Padres National Forest를 올라가다가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 사진을 찍고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불에 타서 줄기만 앙상히 남겨진 덤불과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 . .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리고 오직 재밖에 남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다 불에 타서 그루터기만 남은 덤불 하나가 내 눈에 띄었습니다(사진). 그래서 그것을 발로 툭 찼습니다. 발로 건드리면, 그냥 뽑히리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은 뽑히지 않았습니다. 몇 번 발로 차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는데, 그 나무가 사실은 여전히 든든히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래에 여전히 뿌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비록 줄기와 가지는 불에 타고 없어졌지만, 뿌리까지 타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사야 선지자의 말이 내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습니다.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6:11-13)
불에 타서 황폐해진 마을들, 캠프장, 그리고 방대한 피해 산악지역. . . 그래서 새들과 들짐승들마저 떠나가버린 곳. . . 오직 남은 것이라곤 진한 불탄 내음. . . 그러나 그곳엔 아직 그루터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윗부분은 불타 없어졌을지라도, 아래 부분, 곧 뿌리들은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거센 화염으로부터 살아 남았습니다. 아니 남겨진 것입니다. 은혜의 때가 도래하노라면, 다시 소생하고자. 그래서 검게 변해버린 산악을 다시 푸르름으로 옷 입혀 주려고.
물론 베임을 당한 나무의 그루터기는 멸망의 상징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선지자 이사야는 바로 그런 그루터기로부터 희망을 찾습니다. 참고로, 오늘 본문은 “남은 그루터기혹은 남은 자”의 사상이 핵심인 말씀입니다.
아무리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가뭄이 혹독히 몰아쳐도, 땅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린 나무는 잘 견뎌냅니다땅속 깊이 단단하게 뿌리가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보이진 않지만, 뿌리는 나무를 지탱해줍니다. 시절이 좋을 땐 뿌리는 나무로 하여금 울창한 잎을 내고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빈곤해지면, 어려운 환경에서 견뎌낼 수 있도록 나무를 붙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정원에 심겨진 나무가 이유를 모르게 죽어가는 걸 가끔 보게 되는데, 그것의 원인을 살펴보면, 그곳에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반대로, 수분은 충분하나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뿌리가 썩어가거나, 혹은 쓰레기나 기타 폐기물이 땅 속에 묻혀 있어 뿌리를 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나무를 키우길 원한다면, 또한 그 나무로부터 풍성한 열매를 기대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뿌리 관리입니다. 뿌리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뿌리가 잘 자라면, 굳이 윗부분은 크게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건강한 뿌리가 있으면, 그 나무는 어차피 잘 자랄 것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포도농사를 하는 농부는 포도나무 가지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오히려 가지를 모두 잘라냅니다. 밑동만 남겨놓은 채(사진). . . 뿌리가 중요합니다. 뿌리가 건강하다면, 굳이 줄기를 길게 남겨둘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전 해에 자랐던 줄기는 잘라내야 합니다. 그 해 봄에 뻗어 나올 새 줄기에서 꽃이 피고 포도열매가 맺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전 언급한 줄기는 불에 타버렸으나 그루터기는 여전히 살아 남은 덤불나무 그루터기를 기억하시죠? (사진) 땅 속에 깊게 박혀 있는 뿌리 덕분에 그것이 아직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서 문뜩 내 뇌리에 떠오른 것은 두 가지였는데, 앞에서 말한 사 6:11-13과 그 다음은 우리교회 모습이었습니다.  
혹시 우리 우들랜드교회가 마치 이와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센 화염에 불타버린 교회. 한때 분노와 미움과 증오심에 불타올라 앙상한 뼈대만 남은 교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만약 그것이 우리의 아픈 과거였다면? . . .  그러나 . . . 아직 죽은 게 아닙니다. 아직 그루터기가 살아 있습니다.
물론 인간적 의지와 고집과 수고가 지금껏 우리로 하여금 살아남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껏 존속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아픈 감정이 여태껏 열정을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살아남게 했을 테니까. . .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꿈꾸는 교회다운 교회 모습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우리는 남겨진 것이라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남겨진 것이라고우린 살아 남은 게 아니라 남겨진 것입니다. 거룩한 그루터기로써 남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던질 질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거룩한 그루터기라면, ?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겨두신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찾아야 합니다.
이사야10:15-21을 보노라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하나님께서 숱한 전쟁의 화염 속에서, 그리고 기나긴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생활 가운데서,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남겨두신 이유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앞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 의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더 이상 자신들을 의지하거나, 주변 강대국들을 의지하거나, 또한 이방신들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난날의 과오, 실수, 잘못을 후회할 뿐만 아니라 이젠 일어나 하나님께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물론 어떻게 보노라면, 거센 화마 속에서 남겨진다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애당초 그런 일이 없었으면 싶습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거센 화마가 일어났다는 것과 그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달리 생각해 보노라면, 선지자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교회 역시 남겨졌음을 감사히 여기고,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을 더욱 의지하는 기회를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회개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11:5).
더 이상 과거를 탓하며, 무기력하게 남겨진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서, 이젠 일어나 능하신 그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는 바로 그런 남아 있는 자들이 되었으면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남겨진 거룩한 그루터기라면,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시 세워가야 합니다. 어떻게? “Rooted”이란 시리즈 설교를 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씩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뿌리 깊은 나무”(양세정)란 시의 일부를 읽어드리며 오늘 말씀을 매듭 짓겠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 (Deep Rooted Tree) (by 양세정)
주변 모두가 떠나간다 해도 괜찮습니다
빈털터리 황무지가 되어도 상관없어요
꽃잎 하나 사과 한 알 맺지 못하면 또 어떻습니까

혹은 누가 저를 밑동만 남기고 잘라가더라도,
누군가의 쉴 의자가 되어드리면 그만이지요
땅속 깊숙이 가지가 무성한걸요
그건 어느 누구도 잘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보다 무서운 건
저 스스로 힘이 없어 더는 자라고 싶지 않을 때,
뿌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는데도
아무 의욕도 없고 관심도 없어지는 거죠

우리의 뿌리가 더 이상 썩어가지 않길 바랍니다. 과거의 기억의 뿌리를 갈아먹도록 내버려두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뿌리가 건강하게 뻗어갈 수 있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옆으로, 위로 자라가고, 풍성한 열매를 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길 원합니다. 바로 그런 교회가 우리가 꿈꾸는 교회가 아닐까요?

참고로, “2018년을 위한 나의 한 단어(My One Word for 2018)”“Rooted(뿌리내림)”으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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