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11, 2018

구유에 들어 있는 표적




구유에 들어 있는 표적
2:1-7/20 (2018 12 9. 대강절 둘째 주일예배)
오늘 읽었던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황제 아구스도가 내린 칙령에 따라 로마제국 내에 식민지 백성은 누구나 호적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호적을 등록하러 모두가 각자 고향을 찾게 되었고, 나사렛에서 거주하던 요셉도 자기 약혼자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임신 중이었는데,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땐 곧 아기를 출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호적 등록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여행 중이었기에 베들레헴에서 빈 여관방을 찾는 게 극도로 힘들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갓 태어날 아이를 위해 방을 구하려 힘썼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결국 그는 여관 주인에게 통사정해 마구간이나마 쉴 공간으로 간신히 얻었습니다.
어렵게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마구간에서. 짐승들이 쉬는 공간에서.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자, 마리아는 그를 포대기로 잘 싸서 구유에 눕혔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첫날 밤을 말구유에 누워서 지내야 했던 아기를 생각해 봅니다. 그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다 싶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그 아이가 누구입니까? 몇 달 전에 천사장 가브리엘이 나사렛에서 마리아게 찾아와 이렇게 일러주지 않았습니까? “마리아여, 무서워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1:30-33).
천사장 가브리엘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난 아이는 큰 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아닙니까?  곧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서 격에 맞는 곳에서 그가 태어났어야 하지 않습니까?   
한편으로, 천사장 가브리엘의 말이 맞다면, 마리아는 큰 영광을 얻은 셈입니다. 자신의 비천한 몸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왕들이 아들을 얻게 될 때, 얼마나 호들갑을 떱니까? 하물며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것이 얼마나 경사스런 사건입니까? 그런데 그토록 고귀한 이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는 지극히 낮고 천한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방을 구하지 못해 여관 마구간에서 첫아기를 낳았을 때, 한 어미로서 마리아의 실망이 이만 저만 큰 게 아니었을 것입니다. 포근한 침대가 아닌 말구유에 짚을 깔고 그곳에 갓 낳은 아들을 눕혀야 했을 때, 어머니로서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마리아가 이런 생각도 해보았으리라 믿습니다. “도대체 남편 요셉의 가족과 친척은 모두 어디에 있나? 그들도 호구 조사를 위해 이곳 베들레헴으로 오지 않았겠나?”
그런데 혹시 요셉의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 마리아가 환영 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물론 우리는 그 당시 요셉의 가족이나 친척의 상황을 잘 모릅니다. 성경이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기에.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이를 낳으면, 가족과 친족의 지극한 축하를 받고서 산모는 지친 몸에 쉼을 얻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아이를 낳았을 때, 그녀의 가족이나 요셉의 가족도 그곳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지친 몸도 쉴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피곤한 몸을 일으켜 낳은 아들을 포대기로 잘 감쌌습니다. 구유, 곧 짐승의 여물통을 잘 닦은 후 그 안에 짚을 넣고 아기를 눕힌 후에야 비로소 잠시나마 바닥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구유에 눕힐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혹시 그곳에 아이를 눕히길 주저하진 않았을까요? 짐승의 여물통에 갓 태어난 아기를 눕힐 때 불안하진 않았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짐승의 밥통이었기에? 만약 마구간의 짐승들이 그 여물통에 든 아기를 자신들의 음식으로 잘못 생각하게 된다면?    
짐승의 여물통에 누워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지켜보면서, 어머니로서 마리아는 이런 생각도 가졌으리라 봅니다. “이 아이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 맞긴 하나? 이 모든 것이 정말로 하나님께 계획하신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내 삶을 흔들어 놓으신 것인가? 왜 하나님은 평범한 가정을 꾸려 성실히 살아가려던 요셉과 나의 삶에 들어와 모든 것을 이토록 엉망으로 몰아가는가? , 하나님? , 하나님?”
성도 여러분, 혹시 마리아의 심적 갈등이 여러분에게도 익숙하진 않나요?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곤 하지 않나요? 특별히 계획하던 대로 삶이 진행되기보단 자꾸만 일이 꼬여갈 때. . . 
마리아의 갈등이 깊어져 갈 때, 목자들이 마구간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그들을 보고서 마리아는 더욱 기겁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복잡한데, 난생 처음 본 자들이 마구간에 급습했으니 놀라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또 뭐야?”란 생각이 절로 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목자들이 구유에 포대기에 싸여 누어 있는 아기를 보고서 그 아기에 관해 천사가 들려준 말을 마리아에게 일러줍니다. 바로 그 순간 마리아의 갈등이 멈추었습니다. 아니 갈등이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무척 흥분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목자들로부터 마리아가 어떤 말을 들었기에, 그녀의 갈등이 순간적으로 멈추었을까요? 그 해답을 10-12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오늘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온 세상의 구주가 태어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표적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건대, 태어난 아이가 구유에 누어 있는 것은 결코 불행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혔던 마리아나 요셉에도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구유에 누인 아기가 하나님께서 제시한 표적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본 그 아기가 온 세상의 구주, 곧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 아기가 구유에 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다른 곳에 누어 있었더라면, 만약 그가 화려한 왕궁의 포근한 침대에 누어 있었더라면, 그 아이는 결코 온 세상의 구주, 곧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표적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온 세상의 구주로 오신 아기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어 있어야 했습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를 보고서 목자들은 너무나 흥분했습니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께서 탄생하신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 기쁨과 흥분 가운데 목자들은 들에서 들었던 천군천사의 찬양을 흥얼거렸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14).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는 목자들에게만 표적이 아니라 이젠 마리아와 요셉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마리아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실로 엄청난 표적 그 자체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어 있는 자신의 아기를 보고서 마리아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가슴 아파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뻤습니다. 그것이 바로 목자들이 말했던 그 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마리아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온 세상을 위한 표적이기도 했습니다. 곧 나와 여러분을 위한 표적이었습니다. 2000년 전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우리의 구주, 곧 우리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고, 그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어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주 탄생을 알리는 표적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마구간 여물통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표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무척 쉬웠습니다. 마구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습니다. 쇠로 만들어진 문이나 빗장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곳을 지키는 군병도 없었습니다. 그곳은 활짝 열려 있는 마구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표적을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믿는 자는 누구든지 표적의 아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로 나아가는 길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렸기 때문입니다. 곧 여러분과 나에게도.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이들이 엉뚱한 데서 찾아오신 구주를 찾는 경향이 많습니다. 무슨 말이고 하면, 삶을 살아가면서 삶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있다는 확신을 갖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갖길 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고 있다는 확신을 찾습니다. 그래서 표적을 원합니다.
많은 경우 계획한 모든 게 뜻대로 진행된다면, 확신을 갖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제자리에서 잘 운행되고 있다면, 그제야 마음을 놓습니다. 하지만 계획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곧 실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러할까요?   
만약 우리가 이러한 딜레마에 빠져 힘들어하고 있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큰 교훈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때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우리가 계획한 것과 정반대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성공을 원하지만, 실패로 끝나기도 합니다. 높은 곳에 오르려 힘쓰나, 오히려 아주 낮은 곳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시간에 묵묵히 되새김질 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힘들어하고 있는 그 절망스런 장소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표적의 장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표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곧 짐승의 여물통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바로 그 표적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에.
다시 말씀드립니다. 시시때때로 우리의 꿈과 계획이 산산조각처럼 부셔져 버리곤 합니다. 더 이상 떨어질 수가 없을 정도로 낮은 처지로 몰리곤 합니다. 친한 친구들마저 등을 돌렸기에 한없이 외롭습니다. 가족과 친척들마저 외면합니다. 그런 상황으로 몰리면, 자신이 너무 비참해 보입니다. 실패한 인생은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그런 상황이야말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할 최적의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 상황이 우리가 찾아야 할 바로 그 표적의 구유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께서 내 말을 오해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결코 꿈과 계획의 실패를 포장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아도 괜찮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게 되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외로움 가운데서 여전히 우리의 구주께서는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그가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다시 일어서도록 새 힘을 불어넣어주신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2000년 전 베들레헴 마구간 말구유에서처럼 우리 생의 가장 쓰라린 아픔, 가장 처절한 굴욕의 현장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궁극적으로 그곳마저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도구로 활용하십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11, 12).  즉시 목자들은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가야 했습니다. 서둘러 그곳으로 찾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표적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달려갔습니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6, 17).
성도 여러분, 금번 대강절에 가장 낮은 자리까지 찾아와 우리를 만나주시는 구주를 뵈옵고,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가 만난 그 주님을 기쁨과 환희 가운데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천군천사들처럼 우리 역시 이렇게 찬양하길 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14).

God’s Sign in A Manger




God’s Sign in A Manger
LK 2:1-7/20 (December 9, 2018)
The text we read today is the story of Jesus' birth.
Caesar Augustus issued a decree that a census should be taken of the entire Roman world, so all people in the Empire had to go to their own hometown and register their families. Therefore, Joseph, who lived in Nazareth, brought his fiancé Mary with him to Bethlehem.
Mary was pregnant, and when arriving in Bethlehem, she was about to give birth to a child. But there was a big problem. It was extremely difficult to find a room in Bethlehem, because so many people were traveling for family registration. Joseph tried to save a room for Mary and the child to be born, but all his effort was in vain. In the end, he found a space in a stable attached to the inn and took Mary there to rest.
In difficulty, Mary gave birth to a son in a stable where the animals were resting. And as the boy was born, Mary wrapped him in cloths and laid him in a manger.
As soon as the child was born, he was put in a manger to spend his first night there. As thinking of his first night in a manger, I feel like the baby’s fate looked so unfortunate.
But who is the new born child? A few months ago, did not Gabriel the archangel from God come to Mary and tell her like this? “Do not be afraid, Mary, you have found favor with God. You will be with child and give birth to a son, and you are to give him the name Jesus. He will be great and will be called the Son of the Most High. The Lord God will give him the throne of his father David, and he will reign over the house of Jacob forever; his kingdom will never end” (LK 1:30-33).   
According to Gabriel, the baby from Mary was a great feagure, the Son of the Most High. It means he was God’s Son. If so, he must have been born in the most elegant of surroundings.
On the other hand, if what Gabriel had told her was true, Mary had been given an incredible honor. It was because God’s Son would be born through her lowly body. How celebrating is it when a son is born to an earthly king? If so, how celebrating must it have been if it was about the birth of the Son of God, the Creator of the universe? But, instead, when the Son from the Most High was born, he made his appearance on earth in the lowliest of circumstances. 
So Mary must have felt disheartened as she couldn’t find a room, but had to give birth to her first son in the stable. When laying some straws in a manger instead of a soft cloths and placing her newborn baby there, she must have felt sorry to him as his mother. Don’t you think so?
I believe Mary had thought like this. “Where is Joseph’s family? Don’t they have come to Bethlehem for the census too?”
Perhaps Mary and Joseph were not welcome with the rest of his family. Of course, we don’t know about the real situations of Joseph’s family and relatives in those days because the Bible doesn’t mention about them.
In general, if a mother gives birth to a child, she would be surrounded by family and relatives and congratulated and rest all the day long. But Mary was all alone, exhausted but couldn’t rest after the delivery. Rather, she got up to clean and wrap her son with cloths and laid him down in a manger and then now she finally got rested for a moment.
I wonder what Mary had thought when putting her son in a manger. Wasn’t she hesitant to put him there? Wasn’t she afraid to put him there because it was the trough for animals to have their food? What if the animals came to it in search of food?
As watching her son sleeping in a manger, what did she think as his mother? Didn’t she wonder if the child was really God’s Son, if this was really what God had planned?” “Why did God send an angel and shook my life? Why did God come into my life and Joseph’s and make our lives so messy like this? What we want is simply to live a normal life and live happy?” “Why, God?” “Why, God?”
Dear brothers and sisters, isn’t Mary's inner conflict familiar to you? Aren’t you asking the similar questions to God so often? Especially when something that you planned don’t go well, and your life goes the opposite to what you had expected.
Mary's conflict deepened, as some shepherds rushed into the stable. Mary was frightened when she saw them coming in. The situation was a way too much for her to handle already, but to make things worse, so Mary got extremely terrified. She must have thought, “What are these gangs? Why are they here?”
The shepherds then told what the angel had spoken to them about the baby, after they had seen him wrapped in cloths and laid in a manger. Then not only was her dilemma stopped but also she became thrilled about what she heard from the shepherds.  
Then what did Mary hear from the shepherds, so that her inner conflict disappeared momentarily? The answer can be found in verses 10-12:
Do not be afraid. I bring you good news of great joy that will be for all the people.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Christ the Lord. This will be a sign to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The news was that “Today the Savior of the whole world has been born in Bethlehem, the town of David.” And the sign to it was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aid in a manger.
It is not unfortunate for the child to be laid in a manger. It was not too bad for Mary and Joseph to wrap their baby in cloths and lay him in a manger. The reason is that "the baby in the manger" was the very sign God wanted to give.
The shepherds knew it was the Christ-child because he was lying in a manger. If he had been lying in another place, if he had been resting in the cozy bed of the grand palace, he was never the Savior, the Christ of all. It was different from what God had told them. As the angel said, the baby, who came to be the Savior of the whole world, must have been wrapped in cloths, resting in a manger. It was the true sign from God for the shepherds.
Shepherds were excited as they saw a baby resting in a manger. Because they were witnessing the birth of the Savior of the world. So with great joy and excitement, they hoisted the praise that they had heard from the heavenly choir in the fields, singing: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s” (vs 14).
When the shepherds told Mary of their sign from God, it must have become an amazing confirmation of her as well. So when looking at her baby resting in a manger again, Mary was no longer depressed. She was no longer disappointed. She was no longer feeling sorry for the baby in a manger. Actually she was rather happy. It was for the reason that it was the very sign for the shepherds told by God. And it was the sign for Mary herself from God.
Of course it was also the very sign for the whole world. Therefore, it was the very sign for me and for you. Two thousand years ago, our Savior was born in Bethlehem, Judea, our Christ was born there, wrapped in cloths, resting in a manger his first night.
That’s right. The sign to the Christ-birth was not far away. It was in a manger. So it was very easy for everyone to come to the sign. The stable was open to anyone. It meant it was approachable and accessible to all. There were no gate bars to the sign. No solider was guarding. Widely open to all.  
What this means is that anyone who believes in the sign as God’s blessing to him can go forth to the sign-baby anytime. The road to the sign-baby was accessible to everyone. So it is the same to you and to me too.
Unfortunately, many people tend to find the Savior in the wrong places. What I am saying is this. We want to know we are in God’s will and plan. We want to know God is still with us. We want to know we are being used by God. We want confirmation. That’s why we often ask a sign from God.
We think confirmation of our decisions is that things go well as we had planned. We are relieved if they come into the right place. So we are disappointed if things don’t go well as we had planned. We think God doesn’t help us at all. But is it true?
If we are getting into this dilemma, I hope we can find some lessons from the text today. Sometimes things do not go well as the way we expect. Sometimes they flow contrary to what we plan. We want to be successful, but we end up in failure. We want to climb a high place, but rather we fall to a very low place.
That is exactly what we should consider at such a time. “What if the sign is that God is with us in our desolate place?”  “What if the sign that God is still with is in our lowliest point of life?” In other words, the confirmation for us is the manger itself.
Let me tell you this way. Oftentimes our dreams and plans are falling apart. Despite all our toils, we are falling into the lowliest point of life. Friends are leaving, so we get lonely. Even family and relatives are turning their backs on us. When we are at such a point of life, we think we are finished. We are nothing but a failure. But who knows that situation is exactly where God is with us. Who knows that situation is the manger, the very sign, for us from God?      
Brothers and sisters, please don’t misunderstand what I am telling you now. I never mean to beautify the failures of our dreams or plans. I never mean to say that it's okay for us to be neglected or ignored by people. What I want to say is this. In our failure, frustration and loneliness, our Savior is still with us. In such situations he gives us strength and comforts us, and gives us courage to stand up again.
That’s right. The manger in Bethlehem 2,000 years ago highlights the way God uses our deepest pain and our humiliation and turn it into the way he will be glorified. 
The angel told the shepherds,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Christ the Lord. This will be a sign to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vss 11, 12). The shepherds had to go to the stable in Bethlehem immediately. They had to go there and check the sign-baby. So they ran to the stable in Bethlehem without delay. “So they hurried off and found Mary and Joseph, and the baby, who was lying in the manger. When they had seen him, they spread the word concerning what had been told them about this child” (vss 16, 17).
Dear brothers and sisters, I hope that during this Advent season we can all meet the Savior who comes to our lowliest places and, in return, we can tell the people about the Lord we had met. And, like the heavenly choir, we will be able to praise like this: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s” (vs 14).

Friday, December 7, 2018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을 회상하며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을 회상하며
미국의 41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94세의 일기로 지난 11 30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이 땅에서의 순례를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화요일엔 와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조문의례가 있었고, 수요일 오전엔 국립성당(National Cathedral)에서 추모예배가 열렸으며, 목요일 오전엔 부시 전 대통령이 평소 출석한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성공회교회에서 마지막 추모예배가 열렸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바바라 여사에게 특별한 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된 추모 일정 모두를 빠뜨리지 않고 시청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삶을 회상할 있도록 매우 잘 짜인 순서순서였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국립성당과 성공회교회 추모예배 설교와 조문은 듣는 자들로 하여금 그를 기억하며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도록 했습니다. 
그가 생전에 말했던 조종사들의 전문용어 시계 양호’(CAVU)”가 조문 가운데 언급되었을 땐, 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살아 생전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18~19살 태평양전쟁 조종사 시절 이륙 직전의 두려움 속에 완벽한 비행을 위해 내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시계 양호였습니다. 나는 이제 인생도 그와 같이 느낍니다. 바바라와 나는 더 좋은 삶을 바랄 수 없을 만큼 참으로 행복하고 평온합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 존 미첨의 말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의 인생의 규범은 ‘진실을 말하고 남을 탓하지 말라. 굳건하게 최선을 다하고 용서하라, 끝까지 완주하라’이었습니다.” 그는 부시 전 대통령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좇아 삶을 살기 위해 힘쓰다 이 세상을 떠나간) 가장 미국적인 신념가”로 소개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삶의 본을 통해 보여준 그의 일화 역시 자주 언급되곤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보단 국민과 나라를 위해 최선이라고 믿었던 바를 성취하고자 묵묵히 길을 걷고서 떠나간 사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에겐 국립성당에서 열린 추모예배보단 휴스턴의 성공회교회 추모예배가 더욱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예배 가운데 부시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바바라 부시 여사가 살아생전에 즐겨 불렀던 찬송가들이 울러 퍼질 땐 참으로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축도 후 온 회중이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Onward, Christian Soldiers)”란 찬양을 불렀는데, 그 찬양 역시 부시 전 대통령의 특별한 부탁에 의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병으로서 충성스런 삶을 힘써 살다 가노라라고 부시 전 대통령이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장지였던 부시 도시관(Bush Library)에서 편대를 이룬 군용기들이 날아오더니 그 중 한 대가 수직으로 하늘로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것은 승리자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감을 상징했습니다.



2018. 12. 9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2. 대강절(Advent)이 지난 주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강절 영적순례에 기도로 함께 하시고, 제단장식용 포인세티아 기증 부탁드립니다.

3. 오늘 남선교회 총회가 교육관, 여선교회 총회가 본당에서 2부예배 후에 있습니다.

4. 한 해를 마감하는 정기임원회가 다음 주일(12월 16일) 2부예배 후에 AV Room에서 있습니다.

5. 화요성경공부: 12월 18일로 2018년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1월에 다시 개학합니다.

6. 성탄주일예배는 12월 23일 주일에 있습니다. 1부, 2부 그리고 주일학교가 함께 모여 합동 예배로 드립니다.
   ☑ 성탄주일에 예배에는 세례, 입교예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세례나 입교를 원하시는 분은 담임목사님께 연락 바랍니다.

7. 성탄전야예배가 12월 24일(월) 오후 8시에 있고 26일 수요예배는 쉽니다.

8. 송구영신의 밤 예배가 12월 31일 밤 11시에 교회에서 있습니다.

9. 안내석에 준비된 새해(2019년) 헌화자, 1부/2부 떡 봉사자 점심식사 제공자 지원서에 Sign Up해 주시기 바랍니다.

10. 2019년도 달력을 안내석에서 받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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