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18, 2019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창 1:26-31 (2019 8 18일 주일예배)
폴 프레드릭 마이어하임(Paul Friedrich Meyerheim)이 공식적 원작자로 알려지고 있는 두꺼비 왕자(The Frog Prince)”란 동화가 있습니다물론 이것은 각 문화와 풍습에 따라 여러 번역으로 각색되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오늘 설교는 그 번역본들 중 하나를 소개해 봅니다.
옛날 옛적부터 전해온 이야기에 의할 것 같으면어느 잘 생긴 왕자가 짓궂은 마녀의 마술에 걸려 그만 두꺼비로 변했습니다그런데 마술에서 풀려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리따운 한 공주로부터 입맞춤 받는 것이었습니다물론 마녀는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 확신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동시대에 아리따운 한 공주가 살고 있었는데멋진 왕자와 결혼식을 기다렸으나 그녀의 생애 동안 그런 왕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공주가 작은 호숫가 숲에서 혼자 거닐다 숲 속에서 아주 못생긴 두꺼비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공주가 호숫가에 앉아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며 잘 생긴 왕자가 나타날 상상을 하고 있는데그 개구리가 공주에게로 뛰어올라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실재론 매우 잘 생긴 왕자라고 말을 건넨 것입니다그리고 만약 그녀가 자신에게 키스를 해주면본래 모습으로 회복되어 그녀와 결혼해 평생토록 그녀만을 사랑하며 살아가겠노라 약속했습니다.
처음엔 두꺼비의 말이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려 주춤거렸으나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공주가 두꺼비 입술에 키스했습니다.
그랬더니 두꺼비가 멋진 왕자로 변했습니다그리고 약속대로 왕자는 공주와 결혼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 두꺼비 왕자 우화는 단순히 어린이 동화로 치부해 버리기엔 담고 있는 교훈이 매우 큽니다그 이유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특별히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도자기 자신의 참 모습을 사랑하며 살아가지 못한 채 두꺼비 모습즉 겉모습만 보고 실망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비하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 그림 PPT)
그래서 돌아온 탕자란 책에서 헨리 나우웬이 이렇게 적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불만을 낳은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혹시 불만을 양산하는 문화 속에서 자기 자신이 힘들어하고 있진 않는지 스스로를 진단해보기 바랍니다달리 말해서개인적 능력이나 상황을 생각할 때 자꾸만 움츠려 들게 몰아가는 부정적 감정 때문에 자기 자신을 비하하진 않는지 생각해보기 바랍니다그리고 이렇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만약 그것이 나의 참 모습이 아니라면?”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불만을 낳는 문화 속에서 힘들어하는 우리가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우리 자신에 관한 진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습대로 나와 여러분을 친히 창조하셨다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26절 상반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우리가 갖고 있는 모습 그대를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셨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지 결코 진화의 산물이 아닙니다(원숭이 진화 그림 PPT).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장 나중에 만드신 창조의 걸작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모양(Image)”은 히브리어로 -(tseh'-lem)”인데, “그림자유령환상닮음이미지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형상은 -우쓰(히브리어)은 닮음같음모델형상이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그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1) 하나님의 깊은 영성 안에서 우리는 지적이고 독립적 개체로 창조되었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도덕적 완전과 성결 속에서 창조되었습니다.
(3)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능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인간 창조는 다른 피조물 창조에선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각별한 마음씀씀이가 나타납니다다른 피조물 창조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빛이 있었고”( 1:3).
또한 이미 만들어 놓은 개체들에게 이런 식으로 명하셨습니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그대로 되어”(9). 곧 말씀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창조 때는 사뭇 다릅니다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26).
단순히 말로만 하기보단 그가 손수 사람을 빚으셨습니다더욱 놀라운 것은 성부성자성령 세 인격체가 서로 협력하셨습니다그래서 우리란 단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말을 하고뜻을 갖고 행동합니다달리 말해하나님처럼 우리 인간에게 사고언어의지그리고 행동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 이 구절을 좀더 깊게 생각해 보면우리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듯다른 사람들 역시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다른 사람의 모습 역시 있는 그대로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즉 각자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존재이듯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 복된 존재입니다성경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그들에게 이르시되”(28절 상반절). 아담 한 사람에게만 축복하신 게 아니라 그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31).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새로운 눈이 필요합니다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이.
나는 이렇게 확신합니다우리 안에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시발점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의 걸작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거울에 비취인 자신에 대한 생각은 삶의 질을 결정 짓습니다만약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인생은 즉시 바뀔 수 있습니다그래서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했나 봅니다. “본래 선하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하지만 생각이 그것을 만듭니다.”
지금 어디에 있든지과거에 무엇을 했던지 아니면 하지 못했던지 간에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의 걸작임을 인정하고서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자신에 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조언을 나눌까 합니다.
첫째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선하고하나님께서 보실 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우 큰 가치를 지닌 존재입니다그렇습니다하나님의 눈에 우리 모두는 각별합니다.
둘째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로 중요한 존재입니다무엇보다 먼저자기 자신에게 중요합니다나의 나 됨이 내 자신에게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실로 중요합니다우리가 태어난 날은 그들의 삶에 실로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자라면서 우리가 했던 모든 행동이 그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족과 다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무척 중요합니다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교회와 직장과 지역사회에 중요합니다우리가 하거나 하지 않은 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노라면행복하고 성공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무척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느끼고 행동한 대로 그들에게는 현실이 됩니다.
셋째소원하는 대로 환경을 또한 주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능력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바를 성취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특별한 목적 가운데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그렇지 않나요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멋진 일을 할 수 있도록 축복 받았습니다.
넷째우리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삶의 방향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맡겨졌습니다곧 행복해지고일을 성취하며뜻을 높여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겠다고 결단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적은 자신 안에 있는 의심과 두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하나님께서 친히 빚으신 축복된 존재로서 이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어떤 이상적인 삶을 추구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그려보길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행복하고평화롭고즐거우며흥분으로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고 생각해 보십니다이런 확신이 있다면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하루를 열심히 시작할 것입니다자신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을 것이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하는 일이 즐겁고사회에 조그마한 긍정적 변화이나마 줄 수 있는 삶에 만족을 느낍니다.
부분부분 모든 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감사해야 합니다삶의 어느 영역에서 불행하거나 불만족스럽게 느낀다면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혹은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두꺼비 안에 갇혀 있는 잘 생긴 왕자를즉 부정적 사고나 그릇된 믿음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의 참 모습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멋진 왕자가 풀려날 수 있도록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겠다고 지금 결단하십시오.

Friday, August 16, 2019

비트겐슈타인의 자




비트겐슈타인의 자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 전도활동 중 평소처럼 어느 날 호숫가에 앉아 몰려든 무리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그날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는데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그리고 누룩 비유”( 13).
그런데 비유(parable)”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을 곰곰이 씹으면 씹을수록 안에 숨겨 있는 진리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예수님의 비유도 표면상으론 무리가 듣고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습니다물론 그들이 그의 비유를 단순히 재미난 이야기로만 들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예수님의 비유 안에는 실로 놀라운 천국에 관한 복된 소식이 담겨 있었습니다영생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신비로운 지혜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들을 귀가 열렸던 소수의 사람들특별히 예수님의 제자들이 비유를 듣고서 안에 담긴 교훈을 알고 싶었습니다또한 그들이 궁금히 여긴 것은 왜 무리에게 예수께서 굳이 비유로만 말씀하시나?”였습니다그 궁금증에 예수께서 이런 화답하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1, 12). 더 나아가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며 예수께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이는 눈으로 보고귀로 듣고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마 13:14, 15). 예수께서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쉽게 설명하면무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 자들은 2,000년 전 유대인들만이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서도 편협적 수용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자기 주관(主觀)에서 묶인 채 주변 사람들을 보고 판단합니다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고 들으니 서로 간에 쉽게 오해가 생깁니다오해는 자기 자신이 했으면서 괜히 남을 탓합니다결국 가뭄에 메말라 갈라진 논처럼 서로간의 관계가 쫙쫙 갈라져 있습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스킨 인 데 게임(Skin in the Games)란 책에 비트겐슈타인의 자란 표현이 있는데이 질문과 함께 소개됩니다. “탁자를 자로 재는 행위그게 탁자의 길이를 재는 행위일까아니면 자의 길이를 재는 행위일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듣고 싶은 것만 듣기보단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야 합니다그래야 오해가 사라집니다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것이 인간세상입니다나와 너가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자신과 다르다고 함께 하길 거부하기보단 힘들긴 해도 자기 중심적 사고를 내려놓고 각자의 다름을 솔직히 인정하며 애써 손잡고 걸어가야 할 여정입니다달라도 너무 다르다면서 손을 뿌리치진 맙시다.


Saturday, February 9, 2019

그래도 삶은 축복이다




그래도 삶은 축복이다
지난 목요일 참으로 황당한 BBC 뉴스를 접했습니다. 인도 뭄바이에서 한 청년(라파엘 사무엘 27)이 자신의 동의 없이 이 땅에 태어나게 자기 부모를 법정에 세우려 한다는 신문기사였습니다. “왜 나를 나아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게 하느냐?”고 부모에게 따지는 자녀들을 목격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의 동의 없이 부모가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한 것을 두고서 소송을 냈다는 이야기는 처음 접했습니다.
그 청년이 부모에게 소송을 걸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자신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기도 하고, 교통체증으로 힘들어하고, 죽는 날까지 일해야 하고, 각종 폭력과 전쟁에 시달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삶이 힘들어 우울증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불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또한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부모가 자신들의 쾌락을 좇은 결과란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원한 인생이 아니기에 힘들게 삶을 살아가는 비용을 부모가 지불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으로, 그의 부모가 변호사들이기 다른 인도 청년들의 삶과 비교할 때 그 청년의 삶은 그다지 열악해 보이진 않습니다.
물론 그가 부모에게 소송을 걸게 된 것이 단순히 그의 삶이 힘들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는 인도의 한 극단적 종교 분파와 연관된 반() 산아증가정책(anti-natalism)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지구와 다른 피조물에게 해로운 짓만 하기에 이제는 더 이상 폐를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고로 숨을 쉬는 것이나 시선을 던지는 것도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이므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눈을 가리고 다닙니다. 
그의 부모는 변호사답게 아들이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달래기도 하고 논리적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아들은 부모가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막무가내입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을 텐데, 그들도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그 청년의 논리가 참으로 황당할 뿐입니다.
그 청년이 뭐라고 말을 하든지 간에 성경은 우리의 삶이 축복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시니라. ( 1:27, 28)
그 인도 청년이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깨닫지 못한 고로 황당한 사고 속에서 힘들어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며 감사하기보단 누리지 못한 것을 탐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더 좋은 방이 있다는 걸 알면서 지금 이 방에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란 그의 말이 이를 입증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을 알고서 본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실감케 됩니다. 삶은 정녕 축복입니다.

주일성경공부: 마가복음의 발견 I

주일성경공부: 마가복음의 발견 I

3월 3일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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