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20, 2018

노아와 같은 아버지가 됩시다





노아와 같은 아버지가 됩시다
6:1-10 (2018 6 17일 아버지주일)
요즘 TV를 보고 신문 뉴스를 읽노라면, 아버지들의 위치가 위축되어 있어 무척 안타깝습니다. 힘들게 일해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집에 가져다 주고, 집에선 잠만 자고 서둘러 아침 출근길에 오르는 아버지들. 아이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주고 싶으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런 사소한 꿈마저 접어야 하기에 어깨가 축 늘여져 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고, 쉬어야 할 시간에도 집에서 영어와 외국어 그리고 컴퓨터 학습하며 자기발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기에,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하숙생이라고 고백합니다.
가정에서 인정 받고, 가정과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아버지들이 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드리기 위해 오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던 중 많은 성경 인물들 중 누구를 아버지 모델로 말씀 드려야 고민하다 노아를 선택했습니다. 노아가 가정에 충실하고, 사회발전에 도움되며, 건강하고 희망찬 미래를 창조했던 남자의 표본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살던 그 당시 이상적인 아버지 상이 사라졌습니다. 개인, 가정, 사회적 윤리가 땅에 떨어진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가치관 결핍 속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몰랐습니다. 각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생각하고 처신했습니다. 성경은 그 당시 세상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 뿐이었다(6:5).
그런 썩은 세상에서 가정의 가치나 소중함은 시인의 낭만적 감상에 불과했습니다. 가정의 가치는 성적 충동에 밀렸고, 윤리적 가치는 눈에 보기 아름답고 촉각을 유발시키는 것에 밀렸습니다. 성적방종이 극에 달했고, 가정윤리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조하셨던 근본 목적과는 사뭇 다르게 타락했습니다.
바로 그런 시대에 노아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타락 속에서도 노아와 그의 가족은 건강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했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아내에게 존경 받은 남편이었고, 세 아들들과 자부들로부터 존경 받은 아버지였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도덕적 사람으로 인정 받고, 하나님으로부터도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노아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자 힘썼기에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 질문을 성경에서 찾아 보려 합니다.
첫째,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 7:1b).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 노아!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보일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온 세상이 죄악으로 넘친 시대였다고 한다면?
성경은 그 이유를 8절에서 이렇게 제시합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노아가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의롭다는 말을 사용할 때, 인간의 행위가 온전하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발견될 때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 신약시대의 성서적 표현을 빌리자면, 대속양의 피, 곧 그리스도 예수의 피 아래 머물러 있을 때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최고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를 위해 그를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의롭게 되길 원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흘린 대속의 피를 개인적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 즉 그 어린 양의 피에 흠뻑 젖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피로써 죄악이 깨끗이 씻겼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면서 그 은혜에 감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썩어버린 세상과는 다른 삶을 그는 살게 되었고, 당대에 도덕적, 윤리적, 영적 표본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특별히 모든 아버지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흠뻑 젖어 감격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보혈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 생각이 변하고, 인생 목적이 변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삶이 더욱 즐겁고, 행복하며, 생산성이 있습니다.
사형선고 받은 죄수가 무조건적으로 사면 받았다면, 그가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하고 발걸음이 가볍겠습니까? 우리가 바로 사형선고 받았다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사면 받은 영적 사형수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사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깨닫고 감격하노라면 과거 삶과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왜 그리도 불안합니까? 어찌 그리도 걱정, 근심 가운데 살아갑니까? 어찌 그리 축 쳐져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감격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가정에서, 사회 속에서 얼굴이 밝아집니다.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손과 발에 힘이 있습니다.
둘째로,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노아가완전한자였다는 것은 당대의 사람들 중에 거하면서도 그가 흠이 없는 (blameless) 삶을 살려 힘썼다는 의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려 힘썼고,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는 모범적 삶을 살았습니다.
당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삶을 살아간 노아! 정말 멋진 사람입니다. 정말 멋진 신앙인입니다. 정말 멋진 남자입니다. 그리고 정말 멋진 남편이자, 훌륭한 아버지이요 시아버지였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인정 받은 신앙인이지만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다운 신앙은 가정에서 인정 받아야 합니다. 부를 가져다 주는 가장으로 인정 받는 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정에서 훌륭한 인격자이자 진실된 신앙인으로 인정 받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본받고 싶은 사람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내에게 큰소리는 칠대로 다 치면서너희는 부모를 사랑하라고 한다면, 자녀들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아버지는 어머니도 존경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우리에게만 사랑을 요구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현재 아버지로서 자기 모습은 자라나고 있는 자녀들의 미래를 반영해 줍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면, 자녀들 역시 자기 아내나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건강과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 몸에 해로운 음식을 멀리한다면, 자녀들 역시 그러한 음식을 멀리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떠한 미래를 살아가길 원합니까? 그 미래는 전적으로 현재 가정생활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들의 미래는 청산유수와 같은 우리의 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삶에 달려 있습니다.
아버지들은 가정 구성원들을 정신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건강하게 채워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아버지들의 믿음이 아내의 믿음보다 약하고, 더군다나 자녀들의 믿음보다 약한 것을 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가정의 질서가 무너집니다.
나는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길 원합니다. 아버지가 먼저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구성원들에게 보여주길 원합니다. 그러면 가정의 질서가 바로 서고, 가정이 행복합니다.
셋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의 삶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그의 창조주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과 동행한다는 말은 그 사람과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공통 목적을 이루어간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만 추구하며 살았다면,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노아에게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노아야, 너는 높은데 가서 방주를 지어라.” 하나님의 꿈이 노아에게 들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듣고서 노아는 그 엄청난 계획 속으로 가족 모두를 동참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이해할 부분이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 짓는데 걸린 시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을 요구했습니다. 수십 년이 걸리는 거대한 사역 속으로 온 가족을 동참시킬 때 노아가 가장으로서 인정 받지 못했다면, 즉 권위를 인정 받지 못했다면, 그의 아들들과 자부들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일에 동참했겠습니까? 하루 이틀, 혹은 일년 이년은 순종한다고 하지만 그토록 기나긴 세월 동안 방주만 만드는 일에 동참하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홍수가 내릴 것이라 확실한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주변 사람들이 코웃음을 치면서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고 비웃음을 치고 있는 마당에.
하지만 노아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세 자부들은 방주 짓는데 일심으로 마음을 같이 했습니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방주를 지어나갔습니다. 힘이 들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방주를 지어나갔습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 방주가 완성되었고,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방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식구 모두가 들어갔습니다. 식구 모두가 방주에 들어갔다는 말은 그 곳으로 들어간 모든 사람이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모든 가정이 구원의 방주 되기 원합니다. 방주 짓는 가정 되기 원합니다. 그런데 방주 짓는데 가정의 머리 되는 가장이 그 일에 앞장 서기 원합니다.
요즘 교회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여자 성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코 여자 성도들이 많이 계시다는 것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남자 성도들이 적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대부분의 훌륭한 가정들은 한결 같이 가장들의 믿음이 컸고, 가족 구성원들을 영적으로 인도했습니다. 아담, ,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마지막으로, 우리교회 아버지들은 가슴이 넓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소하고 조그마한 것에 걸려 넘어지기 보다는 크고 넓은 이상을 가슴에 품길 바랍니다. 품고 있는 이상이 크고 넓으면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이어 받을 후사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이어 받을 자들이 세상적인 것에 얽매어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세상적인 것은 저 하늘나라를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벌어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원껏 투자하십시오. 저 하늘나라에 갔을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신의 배나 욕망만을 채우며 살았기에 영원히 거할 장막에 아무 것도 없다면 얼마나 한탄하겠습니까?
노아처럼, 여러분 가족과 더불어 부지런히 구원의 방주를 지으십시오. 크고 넓게 지으십시오. 그리하여 그 방주 안으로 많은 영혼이 들어와 구원 받고 변화 받게 하십시오. 바로 이런 삶이 참으로 멋진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삶이야 마로 우리가 꿈꾸는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즐겁고 행복한 아버지날 되시길 바랍니다.”

Noah, A Man of God and of Family




Noah, A Man of God and of Family
Gen 6:1-10 (June 17, 2018. Father’s Day)
If watching TV news and reading newspaper news, it is very disturbing to be informed that many fathers' positions are shrinking these days. They feel so sorry to bring a small salary to home. After going to bed late, they rush to work in the early morning. For the family, they want to do something, but their humble wishes are shattered due to their poor income, so their shoulders are shrunken. While working hard at work, they study foreign languages and computer for self-development at home. Many fathers confess that they are no more than lodgers at home for so little time they can spend with the family.
I prepared today's sermon to cheer up such fathers to be recognized better both at home and at work. While preparing for this sermon, however, I came to choose Noah as a model of all men.
At that time, when Noah lived, the ideal fatherhood got lost. It was an era when the ethics of individuals, families, and society fell to the ground. People did not know right or wrong but lived in the absence of absolute norms. They thought and acted as they were pleased. The Bible describes the world at that time as follows: “Then the LORD saw that the wickedness of man was great on the earth, and that every intent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continually” (Gen 6:5).
In such a sinful generation, the value of the family was only a romantic impression of the poet. The value of the family was pushed away by the sexual impulse, and the morals given up to the tactile sensations. Sexual indulgence came to the extremes, and family ethics became imperative no longer. God’s purpose of creating the family had been forgotten.
Noah lived in such a generation, but in the midst of corruption, he and his family were healthy mentally, morally and spiritually. Noah was a respectable husband to his wife, and an honored father to his children and daughters-in-law. He was also recognized as a moral person by the public and as a righteous man by God.
So how was this ever possible? How could Noah be able to become accepted by the family, by the society and by God? I want to find explanations for this curiosity from the Bible.
First, because of God’s grace, Noah lived a righteous life. “For you [alone] I have seen [to be] righteous before Me in this time” (Gen 7:1b). Noah was righteous in God’s sight! How could a man be found righteous before God? What if the whole world was totally corrupted?
The Bible gives the reason in verse 8: “But Noah found favor in the eyes of the LORD.” First of all, Noah was favored by God. Of course, because he believed in God, God gave him special favor in return.
In fact, when we use the word “justification,” it is not always the case that human action must be perfect. Man can be justified only when discovered in God’s grace.
Righteousness (). According to the biblical terms in the New Testament, we are justified when remaining under the redemptive blood,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Jesus. The greatest grace God has given to man is that he sent to us his Son Jesus Christ, who came to this earth and shed his blood on the Cross for our redemption. Therefore, anyone who wants to be righteous must personally experience the atoning blood spilled by God's Only Begotten Son. Righteousness (), that is, being soaked by the Lamb’s blood. Therefore, we must be confident that our sins are cleansed by the Son’s blood.
Noah upheld his righteous life while personally experiencing God’s grace every day. He then lived a life that was different from the publics in a corrupted generation, and was able to be recognized as a moral, ethical, spiritual man throughout his lifetime.
I want all of us, especially all fathers in our church to go under God’s special favor each day. I want them to live in awe of the blood of Jesus Christ. As going deeper into the grace of that blood, our thoughts can change and our life can grow in purpose. As a result, our each day can turn to be more enjoyable, exciting, and productive.
If a prisoner, sentenced to death, is pardoned with no condition, how happy could he turn to be? How joyful and free could his walk look like? Indeed, we were spiritual prisoners and sentenced to death but forgiven by God's unconditional grace. We were pardoned by his Son’s blood. If thrilled by this wonderful truth, we must become obviously different from our past.
Why are we still so nervous after our conversions to God? Why are we so worried and anxious? Why incompetent are we? This is not the right image of God’s beloved children. We, renewed by the blood of Jesus Christ, must maintain in a thankful spirit for what the blood of Jesus Christ has brought to us. Then we can be confident both at home and at work. We can be ever happy. Our hands and feet can be strengthened.
Second, Noah was perfect during his lifetime. The fact that Noah was "perfect" means he strived to live blameless while living among the people of his time. He tried to remain righteous before God, and at the same time, he thrived to be an example that he would never be ashamed in front of the world.
Noah didn’t get a finger pointing by the people! Wow! He was a wonderful figure, a marvelous man of faith, and a really cool guy. And he was a magnificent husband, a praiseworthy father and a father-in-law.
If recognized at church but not at home or at work, our faith has something wrong. True faith must be praised at home and at work as well. We are not treated simply as a money-maker but as a good individual and true believer by the family and by the co-workers.
As watching their own father, the children should think him as the one they want to imitate ever. What would they say to their father if he hurt his wife and children and asks children to love and respect the parents? Don’t they say back, “How can you demand us to love and respect parents while you don’t love and respect your own wife?”
Now, who we are as a father now reflects the future of our growing children. When a father respects and loves his wife, the children also will respect and love their spouse in the future. If a father keeps away from harmful food for his health and for the health of his own family, the children will also keep them away.
What kind of future do we want to offer to our beloved family? Let us remember that our family’s future depends entirely on our behaviors right now at home. The family’s future does not depend on our words, but on our life examples at this very moment.
A father must try to meet the needs of the family mentally and spiritually. In many cases, however, a father’s faith is weaker than his wife’s, and weaker than his children’s. If so, the order of the family can be hardly established.
I want all fathers to pray harder than anyone in the family. I want fathers to first read the Bible, apply it to his daily life, and show God’s Word to the family members in action. Then the order will get straight back and the family will be healthier than ever before.
Third, Noah walked with God each day. What does it mean “to walk with God”? It meant that his life purpose was to fulfill God's will. The ultimate purpose of his life was to please his God.
If you walk with someone, it means you have a common purpose with him. If Noah walked with God and lived a life pursuing only what he wanted, he can’t be praised as the one walking with God. However, he truly walked with God. The Bible says so. He made God’s will as his own. He lived a life full of self-devotion to achieve what God wanted.
One day a voice of God came, "Noah, go up to the mountain and build an ark!" God's vision was manifested to Noah. By listening to God, he was able to persuade all of his family to join fulfilling God’s vision.
But we have to have a clear understanding here. Noah did not have a day or two to make the ark. So many decades of hard labor were requested. If he asked his entire family to join in a gigantic project that would take many decades, if the family not recognized him as the leader and not granted him full authority, would their sons and daughters-in-law obey him for such a burdensome plan? A day or two, or a year or two years possibly, they could be obedient, but making an ark required a long period of time to finish. Furthermore, there was no guarantee that the Flood would come down and the neighbors around laughed and said, "What the hell are you guys doing?"
But Noah's wife, his three sons, and the three daughters-in-law had a single mind to build the ark as commanded by God. They encouraged and comforted each other during their labors and finally came to finish the job on time. When Noah was 600 years old, the ark was completed, and Noah and his family were able to enter the ark. Every single one in the family went in. The fact that everyone in the family entered the ark means that everyone who entered it was saved.
I pray every single family in our church can be an ark builder. I want all family to join building an ark of salvation. But the head of the family should take the lead in doing this holy vision.
It is regrettable to see that there are too many female believers in the church these days. I don’t mean that it is bad to have many female members in the church but what I mean is that there are relatively too little males in God’s house.
Finally, I would like all fathers in God’s house to have a big heart. Let us have a bigger heart. Let our thoughts and ideas grow bigger, larger and wider, so that we won’t be shaken by the small issues in life.
We are God’s children. We are the heirs of God’s Kingdom. Therefore, we shouldn’t be bound by the things in this world. Rather worldly things must be invested in saving our treasures in eternity. Let us work hard and earn money in order to build an ark not only for ourselves but also for many others. What will be waiting for us when we go to heaven? How lonely do we live if there is nothing in our heavenly house because we have lived in this life for only our own bellies and humanly desires.
Like Noah, let us diligently build the ark of salvation with our family. Let us make it bigger and wider so that many souls come into the ark and are saved. This must be what we are anticipating to achieve with our family. Am I correct?
“Happy Father’s Day to you all!”

Tuesday, June 12, 2018

보고 들은 예수를 전하자




보고 들은 예수를 전하자
요일 1:1-4 (20186 10일 주일예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1:8)라고 말씀하신 후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보내주시리라 약속된 선물, 즉 성령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의 약속을 믿고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여전히 기도하는 중 주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2:1-4).
성령충만함을 입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자, 즉 주 예수에 관한 복된 소식을 전파하고자 길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갔습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입을 크고 넓게 열어 외쳤습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 받으십시오!”
나는 우리교회 역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우리 모두 입을 크고 넓게 열어 예수에 관한 복된 소식을 전하길 원합니다. 우리끼리만 나누는 복음이 아니라 우리 이웃과 지역사회 모든 곳에서, 그리고 세계만방을 향하여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길 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더욱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품고 있는 복음이 혹시 다치지 않을까 염려되어 자기 복음을 지키려 배타적 신앙을 취하지 않기 원합니다. 가능한 한 입을 크게 열었으면 합니다. 가슴을 넓게 열었으면 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복음을 껴안으려고 하지 말고, 세상 모든 영혼이 구원을 얻을 복음까지 기꺼이 껴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성경이 이렇게 권합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54:2, 3).
누누이 강조하지만, 자기 영혼 하나 살리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타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신앙을 품길 원합니다. 받게 될 상처를 두려워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으려 하거나, 사랑을 받으려는 신앙이 아닌,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게 될 상처까지 기쁨으로 받아들일 각오를 갖기 바랍니다. 타인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주는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다”( 9:38)고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추수할 곡식을 추수하려 팔을 걷어 올리는 충성된 일군 되길 원합니다.
초대교회는 성령께서 임하신 이후 10년 이내에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큰 도시들에까지 전파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등이 그 대표적인 도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후 60년대에는 그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흔들어 놓았습니다.
복음이 얼마나 급속하게 퍼져나갔는지, 서민이나 상류층을 가릴 것 없이 전파되었습니다. 워낙 복음이 급하게 전파되니까 사탄은 그 흐름을 제지하고자 로마의 황제 네로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주후 64년엔 네로는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 사건의 범인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지목한 후 교회에 처절한 핍박을 가하게 되지요.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복음 전파의 흐름을 막으려 힘써도 복음은 워낙 생명력이 강했습니다. 핍박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복음은 더욱 강력하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로마 제국의 모든 문화와 종교가 그리스도 문화와 종교로 정복되고 말았습니다. 더 나아가, 주후 230년 무렵엔 그리스도인 황제가 등극합니다. 복음은 살아 있는 생명체임을 분명히 증거한 실례입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떠한 복음을 전했기에 그토록 빠른 시일 내에 로마까지 침투해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곧 우리가 추구할 전도란 무엇일까요?
윌리엄 템플 (William Temple) 대주교는 전도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도록 하고, 그를 구주로 영접하며, 또한 그를 그의 교회를 다스리시는 왕으로 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도에 관한 참으로 좋은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템플의 전도 정의를 풀어보노라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 없인 전도는 듣는 이에게 결코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같은 말을 하더라도, 인간의 의지로 그것을 말하는 것과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는 것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노라면 크게 다릅니다. 인간의 의지로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면, “너나 잘 믿어라고 대꾸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면, 듣는 이의 마음 속에 거부할 수 없는 그 어떠한 힘(물론 성령의 역사입니다)에 빨려 들어갑니다. 말하는 것은 인간의 입술이지만, 그것을 듣는 자의 마음에 비수처럼 찔러 꽂는 이는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전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죽어가는 세상 영혼들에게예수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코자 보내신 바로 그 구세주이십니다라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영혼들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어떻게 예수가 나를 구원한 구세주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복음 전도자는 자신이 만난 예수를 소개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도 요한의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요일 1:1, 2).
역시 복음 전파는 복음을 가슴에 깊게 간직한 자가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복음의 생명을 경험한 자만이 전해줄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한다고 해도, 전하는 복음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못하였거나, 복음의 생명이 없다면, 복음은 결코 전해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으면서, 함께 죽어가는 다른 사람에게자네, 예수 믿어. 그러면 자네 영혼이 구원 받을 수 있어라고 말한다면, 함께 죽어가는 영혼이 이렇게 화답할 것입니다. “자네가 말한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네나 믿고 구원 받게나. 자네가 먼저 구원 받으면, 나도 믿어 보기로 하지.”
자신의 삶은 늘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사랑할 마음의 여유도 없고, 행복의 모습은 없으면서, 타인에게예수 믿으면, 삶이 기쁘고, 마음이 평안하고, 사랑할 마음을 갖게 되며,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집니다라고 말한다면, 듣는 사람이 어떤 대답을 할지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역시 복음 전파는 우리 자신이 경험한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 사함 받은 자신을 보니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존재임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너 하나님의 사람아, 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아!”라고 자신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될 것입니다. 또한 타인에게자네 역시 나처럼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수 있길 원한다네”라고 말해줄 것입니다.  이 사람아, 자네도 나의 옛 모습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사실 과거의 내 모습으로는 자네에게 아무런 말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이렇게 변했지. 과거의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어. 예수의 생명을 소유하니 내 생각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했는지 몰라. 죄지을 생각은 사라지고, 좋은 일을 하고픈 마음으로 바뀌어지더군. 그래서 되도록이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을 뿐이야. 자네도 나처럼 살아보고 싶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 믿게나. 예수 믿으면 자네도 몰라 보게 변할 걸세. 자네가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될 것일세.”
셋째로, 전도란 예수를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세상 사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어 구원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 영혼이 자신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넷째로, 전도란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구주)로 영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10:13).
이렇게 보노라면, 전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죽어가는 영혼에게 교육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일러주어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에 들어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만남, 속회모임, 교회모임 등을 통해 전도 대상이 더욱더 깊게 복음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전도 대상의 입술에서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4:12)란 신앙고백이 흘러나오도록 합니다.
다섯째로, 전도란 예수를 주인으로 삼아 그를 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의 최종 목표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양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 대상이 스스로 일어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줍니다. 타인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해 들었다면, 이젠 자신의 입술로 타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들려주도록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복음의 증인으로서 현재 어느 단계에 머물고 있는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타인들로부터 소개 받는 단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단계? 예수를 구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단계? 아니면 앞으로 더 나아가서 이젠 타인에게 예수를 전하는 단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8:19, 20).
이 명령에서 너희는 주의 제자들뿐만 아닌 우리 모두를 지칭하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교회로써 힘을 다하여 이 지상명령을 완수할 수 있길 축원합니다. 아멘?


Friday, June 8, 2018

장미꽃은 가시가 있다



장미꽃은 가시가 있다 


연인들은 꽃을 좋아합니다. 꽃을 선물할 때 장미를 주로 선물합니다. 빨간색 장미, 빨갛다 못해 검붉어진 장미, 분홍색 장미, 노란색 장미. . . 이토록 다양한 색상을 지닌 채 장미꽃은 연인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장미를 선물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선호하는 색상을 고르기에 주는 사람이나 받는 이 모두가 기뻐합니다. 그래서 장미를 사랑의 사신(메신저)으로 표현하고, 사랑을 표현할 땐 장미꽃을 그려 넣습니다.
그런데 장미는 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쁜 꽃이긴 하나 그것을 어설피 다루면 큰 일 납니다. 줄기에 박힌 가시에 쉽게 찔릴 수 있습니다. 장미가시에 찔리면 유별나게 아픕니다. “장미에 찔리면, 유난히 아픈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배신의 아픔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런 꽃이 품고 있는 독 기운이 통증을 상대적으로 크게 느끼도록 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랑할 땐 환희와 희열만 주다가 상처를 주고 헤어질 땐 이 세상 무엇보다 큰 아픔으로 되갚습니다.
그래서 장미를 다룰 땐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해서 너무 쉽게 다가선다든지 가볍게 다루어선 아니 됩니다. 예쁘고 사랑스럽기에 상대적으로 조심스럽게 또한 아끼는 마음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이 칼럼을 읽으며 뚱딴지처럼 장미꽃 타령을?” 생각하는 분이 계실 텐데 사실은 장미꽃 이야기를 하기 위함은 아니고 교회 주차장 정원에 새롭게 심은 무궁화나무 이야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 오전 교회 앞쪽 주차장에서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정원에 무궁화나무를 심고자 그곳에 있는 몇 그루 장미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장미나무를 옮기다가 어설피 다루다 장미가시에 손이 찔렸습니다. 순간적으로 느껴온 통증이 장미꽃은 가시가 있다는 격언을 생각나게 했던 것입니다.
부 목사님과 몇 분의 도움으로 구덩이를 파고 무궁화나무를 심게 되었습니다. 한쪽 정원은 무궁화 꽃으로, 다른 한쪽은 장미꽃으로 뒤덮일 아름다운 정원을 상상하면서. 곧 한쪽은 우리가 떠나온 조국 대한민국을 상징하고, 다른 한쪽은 현재 삶을 살고 있는 미국을 상징하고. 한쪽은 한인의 멋과 미를 상징하고, 다른 한쪽은 미국의 멋과 미를 상징하고.
주차장에서 성전으로 오르는 모든 이들이 정원이 전하는 의미를 느낄 수 있길 희망합니다. 주의 사랑 안에서 한인회중과 영어회중이 더불어 공존하는 교회, 한 신앙 안에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는 교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모두에게 활짝 열린 교회. . . 바로 이것이 무궁화 정원이 전하자 하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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